Before 2025/Study

토익점수도 없고, 2점대의 학점으로 대기업에 입사한 청년의 인생역정

HungryCamel 2010. 6. 21. 08:02

부끄럽지만, 직업과 변신, 미래에 대한 글들이 근래에 올라와 용기를 내어 써 봅니다.

 

저는 SKY 대학을 졸업하지 못했습니다. 영어도 그렇게 잘 하는 편이 아니고요. 대학을 졸업하고, 공부 잘했던 친구들이 삼성전자, LG전자, IBM 등 내노라 하는 기업으로 취직해 갈 때에 저는 쌀쌀했던 졸업반 11월부터 그 다음 해 3월까지 집에서 천장 무늬 감상하며 보냈습니다. 눈치밥 꽤 먹었습니다.

 

그러다가 조그마한 학원에서 월급 45만원 받기로 하고 4개월 일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너무 원장이 심하게 부려 대판 싸우고 마지막치 월급은 받지도 못하고 나와 한 2개월 또 쉬었지요.

2개월 후, 수유리에 있는 조그마한 출판사에서 총무일을 8개월 해 주었습니다. 출판사 총무일 간단히 볼 게 아닙니다. 1~2개월에 한 번 트럭으로 신간책이 출고되면, 그거 책임지고 창고에 입고시켜야 하고, 매일 전국 각지의 대형서점으로부터 주문받아 발송해야 하고, 한 달에 한 번씩 일주일 정도 전국을 돌며 수금해 와야 하니까요. 

대형출판사야 이런 일을 전담하는 조직이 따로 있어 일의 배분이 잘 되어 있었지만, 제가 일하던 출판사는 너무도 소규모라 저 혼자 이 일을 책임지고 해야 했습니다.

어떤 날은 신간 5천권을 출고되자마자 직접 포장하여 전국으로 배송까지 완료를 하고 나니 팔에 힘이 하나도 없어져 밥숟가락 들 힘도 없더군요. ^^; 이런 일을 하는 동안 비로소 저는 '돈 버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철 들었죠. ㅋㅋ 지나고 보면 힘들었어도 다 추억입니다.

 

여하튼 철 든 후에 저는 위와 같은 일, 즉 Routine을 개선하기 시작했습니다. 출고패턴에 따라 미리 포장을 규격화해 놓고, 쿼트로(지금 excel과 같은 스프레드시트 프로그램)으로 3년치 일일 주문량을 분석해서 서점별로 예상 주문량을 뽑아 놓는 등... 여하튼 오전 중에 모든 Routine한 일들을 완료해 놓고, 오후에는 공부를 하였습니다.

공부라고 해서 뭐 문제 풀고 이런 건 아니고, 그 출판사에서 필요한 공부, 편집디자인을 공부하였죠. 또, 그 출판사는 컴퓨터서적을 출판하는 곳이었기 때문에 프로그래밍 언어 책도 좀 보고, 원고를 Rewrite해야 하기 때문에 문학서적과 작문에 관한 책도 보았습니다.

그러던 중, 마침 편집디자이너가 결혼으로 인해 갑자기 그만 두게 되었고, 시간이 부족하여 그가 맡았던 책을 제가 편집하게 되었습니다. 평소에 제가 공부하던 걸 알게 된 사장이 제게 새로운 일을 맡겨 준 것이지요. 그러더니 편집디자이너를 새로 채용하지 않고 오히려 총무를 새로 채용하여 저를 그 일에서 해방시켜 주었습니다. ㅎㅎ

 

이 때의 편집 경력을 인정받아 조금 규모가 큰 출판사로 이직할 수 있었고, 2년 정도의 컴퓨터 출판계 경력을 안고, KOTRA에 전산관리직으로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KOTRA 전산관리직이면 대단히 좋은 자리일 줄 생각되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은 것이 당시 전산관리직은 보조역할밖에 되지 않아 정규직보다 비정규직이 많았습니다. 길어봐야 2년 정도 근무하면 끝이죠. 그래서, 보통 업무를 허투루 하는 일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당시에 대부분의 직원들은 모든 보고 문서를 '아래아한글 2.x'(2.1, or 2.5)로 작성하고 있었죠. 하지만, 기능의 10%도 사용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타자기 사용하듯이 줄 끝에서 '엔터'를 꼭 치거나, '들여쓰기'도 못해서 '스페이스 바'를 땅땅 두 번 치고 문단을 시작하는 등... 그러니, 문서가 어디 예쁘겠습니까? 삐뚤삐뚤했죠. ㅋㅋ(제가 출판사에서 무슨 tool로 편집했겠습니까? 아래아 한글 2.1과 2.5였습니다. 저는 모든 기능을 단축키로 사용할 수 있었고, 아래아 한글 베타테스터로도 활동했었습니다)

 

제가 한 번 부장님께 문서를 드릴 일이 있어서 잠깐 문서를 손 보고 드렸더니 아주 좋아하시더군요. 줄도 딱 맞고, 글꼴도 적당하게 강조되어 있고... 모든 부서원들이 있는 자리에서 제 문서를 보여주고 모두 따라 하라고 지시했죠. 그 때부터 모든 부서원들은 부장님께 결재 올리기 전에 모두 제게 가져 왔습니다. 한 번만 손 봐 달라고...(^^;)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단축키를 잘 사용하면 작업속도가 매우 빨라집니다. 다른 사람은 1시간 동안 편집해도 삐뚤삐둘한데, 저가 문서를 10여분 정도만 손 보면 더 좋은 문서가 되니까요.

이 일이 있은 후부터는 제가 업무협조를 요청하기가 매우 쉬워졌습니다. 60여명 정도 되는 부서였는데, 그 부서의 모든 PC와 문서 form의 관리를 제가 맡게 되었고, 심지어 다른 부서에서도 '손 봐 달라'는 요청이 줄을 이었죠.

잘 나가던 직장이었지만, 저는 그곳에서 오래 근무할 수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당시 제 신분이 여전히 '비정규 전산관리자'였기 때문이었고, 회사규정상 정규전환이 매우 어려웠습니다.

 

위 사실을 저보다 오히려 주변 분들이 안타까워 하신 나머지, 제게 다른 좋은 직장을 소개하여 주었습니다. 물론, 정규직으로요.

그래서, 옮기게 된 곳이 'XXX 특허법률사무소'였습니다. 이곳에서 저의 역할은 기업 연구소의 아이디어를 특허화 할 수 있도록 '명세서'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명세서'를 만드는 일은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는 조금 어려운 일입니다. 기술도 어느 정도 알아야 하고, 문장력도 좀 있어야 해서요. 그래서, 어느 업계보다 '경력자'를 선호하는 업종이기도 합니다.

 

특허법률사무소에서 4년을 근무하는 동안 워낙 많은 활약을 해서(^^;) 무엇을 말씀드려야 하나 고민되는군요.

진행상 하나만 말씀드리죠.

 

보통 특허요원들은 기업 아이디어를 수령하여 '명세서'를 완성하는데에 3~4일 정도 걸립니다. 정말 어려운 기술 아이디어는 일주일 정도 걸리지요. 그렇게 하여 1 건의 명세서를 완성하여 출원하면, 기업으로부터 수수료를 받습니다. 따라서, 특허법률사무소는 같은 시간에 명세서를 많이 작성할 수 있는 특허요원을 높이 평가합니다. 

일반적으로 특허요원은 3년차부터 제 궤도에 오르는데, 이 때 한 달에 보통 10건 정도 완성할 수 있는 능력을 갖습니다. 연봉 책정과 인사평가도 10건을 기준으로 그 이상이면 상급으로, 10 건 미만은 하급으로 한답니다. 3년차 이상이면서도 한 달에 6건 미만 작성이면, 매우 평가가 안좋습니다.

다른 동료들은 명세서 template를 놓고 아이디어를 보며 고민하면서 작성을 하였지만, 저는 좀 다른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일단 저는 과거에 선배들이 작성했던 명세서 중, 정말 잘 작성되었다라고 평가받는 명세서를 골라 그들의 문장을 복사했습니다. '해 아래 새 것은 없다. 이미 예전에 유사한 사건들이 있었으니...'

잘 작성된 명세서는 그 안에 담긴 문장들이 아이디어 내용을 상당히 잘 표현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들의 문장을 표본으로 삼아 유사 사건들에 응용했습니다. 그들의 잘된 문장을 제 PC에 sentence template로 저장해 놓고 필요할 때마다 꺼내 사용했습니다.

그 결과, 저는 비슷한 또래의 경력자들보다 나은 품질의 명세서를 그들보다 훨씬 더 많이 만들 수 있었습니다. 어느 정도였느냐 하면, 다른 사람의 명세서는 품질의 문제로 결재 중에 반려가 되는 경우도 많았지만, 제 명세서는 반려가 된 적이 거의 없었을 뿐만 아니라, 하루 혹은, 이틀만에 명세서를 완성할 수 있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10건을 처리할 동안 저는 15건 이상을 처리해 낼 수가 있었습니다.

 

이 외에도 많은 일이 있었지만, 생략하고...

 

당시에 주로 제가 일을 처리했던 기업이 전자 계열 대기업이었는데, 그 회사에서 특허팀 팀원이 당시로서는 신생기업이었던 계열사의 지식재산권을 관리할 경력자를 소개해 달라고 제 주변의 어느 고참 선배에게로 부탁을 해 왔답니다. 그 고참 선배는 그 순간에 저를 떠올렸고, 그 분을 통해 제가 대기업 특허팀으로 입사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지금 저는 그 때 입사했던 대기업의 부장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벌써 입사한 지 10년이 넘었네요. 물론, 여기까지 올 때까지도 회사에서 어려운 일들이 많이 있었습니다만, 지나고 보면, 참으로 아스라이 흘러가는 추억이예요.

 

상상해 보세요. 대학 졸업 후, 집에서 눈치밥 먹던 때를 생각해 보면, 제가 지금까지 어떤 생각으로 어떤 노력을 해 왔을까요? 만약 부단한 지식탐구와 도전의식, 패기와 열정이 없었다면, 아마 지금의 저 자신도 없었을 겁니다. 

 

즉, 아무리 힘든 일, 불공평한 일을 당하더라도 '난 최고가 아니다. ==> 난 많이 부족하다 ==> 하지만, 난 아직 완성품이 아니다 ==> 난 조립되어 가는 중이다. ==> 즉, 점점 좋아질 것이다. ==> 조금씩 발전해야 한다.'는 의식으로 '역량계발'과 'Routine 개선', '책임지고 일을 끝'내지 않았다면, 저는 지금도 적은 월급에 불만을 품고서 출판사에서 지금 막 출고된 신간을 트럭에 싣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이 땅의 젊은 청년 여러분, 여러분의 현재 모습은 이미 완료된 과거형(~ed)이 아닙니다. 완료되지 않은 진행형(~ing)입니다. 여러분의 현재 가치에서 주저앉지 마시고, (비록 작은 기업에서 적은 월급을 받는다고 불평만 갖지 마시고) 부단히 노력하여 여러분의 미래 가치를 꾸준히 키워 나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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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clien.net - multi-face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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